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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안 하고 먹고살 수 있으면 모두 금수저? - 에프아이알이 본문
내가 은퇴 계획을 털어놓았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은퇴를 한다고? 너 금수저였구나?!”
파이어 운동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두 가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의 삶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는 직장에 묶여 도시에 위치한 크지고/작지도 않은 아파트에서 중형차를 끌면서 퇴근과 주말과 여름휴가만을 기다리며 사는 삶. 또 또 다른 하나는, 한적한 시골 작은 집에서 나만의 공간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다소 불편한 방식으로 즐기는 삶. 나는 머릿속에는 두 가지 삶을 끊임 없이 저울질 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걱정에 파이어를 포기했다가도,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삶의 매력에 다시 파이어족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곤 했다. 대부분의 걱정은 경제적인 것과 관련이 있었다. '몇 억이나 되는 돈을 언제 마련하지?'와 같이 은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지하는 걱정과 '돈 없이 살 수 있을까?' '돈이 없어지면 삶이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는 삶의 질에 대한 우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을 벌지 않고 수십년을 생활할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목돈이 들어가는 일이 나에게 일어하면 어쩌지?' 하는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었다.
앞으로 천천히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겠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보다 먼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은 '적당한 여유를 누리기 위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월급이라는 굴레에 묶여 살 것인가? 아니면 약간의 불안을 감수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일상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봤어야 한다.
많이 벌고 팍팍한 삶 vs 적게 벌고 행복한 삶
나의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나는 자유를 꿈꿨고, 가족들과의 행복을 꿈꿨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남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금수저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번 같은 말로 대답했다. “나는 내가 꿈꾸는 일상을 만들어 보고 싶어.” 서른이 넘은 직장인에게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황당한 답변에, 현실 감각 떨어지는, 아직까지 철이 들지 않은, 와이프 고생시킬 성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때는 일단 은퇴를 하면 한 동안은 자유롭게 세계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오래도록 미뤄왔던 기타 연주를 배우고, 중국 지방마다 특색 있는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요리 연수를 다녀오고 싶었다. 책이나 실컷 읽고 싶다. 장기 해외 봉사를 다녀오고 싶다. 머리를 기르고 싶다. 내 집은 내 손으로 직접 짓고 싶다는 계획들이 버킷 리스트에 들어 있었다.
나의 은퇴 계획이 무척이나 현실성이 없다는 것은 파이어를 준비하면서 깨닫게 되었지만, 나의 시작은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허술했다. 꿈꾸는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그런 의미에서 파이어 운동에서 이야기하는 설명은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꿈만 좇는 공상가나, 없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상주의자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현실을 무시하고 꿈만을 좇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여유고, 행복이고, 제대로 누릴 수 조차 없다. 현실을 배제한 낭만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아야 꿈도 꿀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경제적 만족과 경제적 풍족은 구분되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경제적 상황에 만족한다면 심적으로 풍족한 삶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반드시 넉넉하고 풍족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며 살아가는 사란은 없지만 선택과 노력으로 만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택을 하고, 선택에 대한 비용을 치르듯 파이어족도 동일한 원리를 따른다.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서 절약이라는 노력을 끊임 없이 지불한다. 지불한 만큼 더 빠른 자유와 더 긴 시간을 보상으로 얻는다. 당연한 아치 아닌가? 꿈꾸는 삶을 위해 준비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은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 소비를 줄이고 불편을 감수하는 노력, 행복을 찾고 꿈을 즐기는 노력...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퇴사를 결심한 2,30대의 절반 이상이 1년 안에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직장 생활로 돌아간다. 일이 없는 생활에 대한 회의와, 미래에 대한 불안, 무의미한 일상에 대한 불만, 삶이 초라해 보일 것 같은 시선 때문이다. 그만큼 꿈을 유지하는 것도, 자유를 누르는 것도 쉽지 않다. 가끔은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보다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꿈꾸는 삶이 있다면 꿈을 손에 넣기 위한 노력도, 그 꿈을 이뤘을 때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은퇴, 너무나도 중요한 결정 앞에서 망설이고, 의심하고, 흔들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신중해 져야한다. 빈틈없이 준비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비현실적이어도, 그렇다고 비관적이어도 곤란하다. 의심하고, 물어보고, 이해하고, 똑똑해져야 한다.
파이어는 성공한 상위 몇 퍼센트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꿈꿀 수 있고,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익숙해진다면, 파이어족이 되는건 너무나도 쉽다. 내가 꿈꾸는 은퇴 라이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아라. 그 삶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를 이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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