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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극장〉날마다 소풍 - 적게 벌어 행복하게 사는 법

에프아이알이 2021. 2. 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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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극장〉 날마다 소풍 - 적게 벌어 행복하게 사는 법

 

"나는 일찍 은퇴해서 조용하게 살 거야."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자연인이 될거냐며 비아냥거렸다. 그들은 조용하고, 소박하고, 느리고, 그래서 조금은 불편한 생활을 선택하는 것에 의아해했다. 어쩌면 적게 벌고 적게 쓰겠다는 생각을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뒤쳐진 가치관이라고 판단했거나, 조기 은퇴는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생활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아직까지 잘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면 걱정만큼 불행한 삶을 사는 것 같지는 않다. 

 

2010년에 방영된 〈인간 극장 - 날마다 소풍〉 편에는 이미 오래전에 제주도 느린 생활을 시작한 부부의 모습을 소개한다. 파이어족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이고 조기 은퇴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거창한 준비 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일상을 보내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파이어족의 선구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파이어족을 꿈꾼다면, 파이어족의 일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이다. 퇴사 후 자유로운 삶에 대한 환상도 없다. 아껴 쓰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자유롭게 즐기고, 자급자족하려고 노력한다. 지극히 소소하고 느린 일상이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일상에서 얻게 되는 변화와 느림의 미학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함께 여유로워지는 것 같지만 남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게 되는 일상생활 속 고민이 제법 많이 화면에 담겨 있다. 

 

파이어족이 되는 순간 일상에는 여유가 묻어난다. 동시에 조금 불편해지기도 한다. 양파 하나를 고를 때도 더 낭비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낡은 자동차를 타면서 폼나지 않은 불편함을 마주한다. 수입이 줄어들고, 적게 쓰게 되면서 겪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분명하다. 그에 반해 얻게 되는 이득이 제법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파이어족이 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파이어족들에게는 물질적 풍족함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종류의 만족감을 얻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일상의 여유다. 화면으로 보여지는 그들의 일상에는 도시의 바쁜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넘쳐나는 시간과 급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은 생활을 전반적으로 바꿔 놓았다.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생겨나고, 자신만의 케렌시아를 만들고, 평소 부족했던 자신의 빈 곳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무심코 지나치던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고, 눈을 두는 곳마다 새로움이 움튼다. 

 

그들이 자주 찾게 되는 장소도 달라졌다.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할 때는 회사 근처 음식점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스트레스를 풀었겠지만, 일상 속에서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나에게 위로를 주는 장소에 찾는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유명 여행지에서의 휴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힐링이다. 휴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파이어족이 된 이후로 집 근처 공원과 서점, 집 안 거실이 여행지와 카페, 음식점 등의 역할을 대신한다. 거실에는 흔들의자를 들여놓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은 나의 작은 행복이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굳이 멀리 여행을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가야 할 필요성을 잊어버렸다. 여유는 멀리에서 찾지 않아도 일상 가까이에 있으니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 것일까? 매일이 소풍이고 매일이 휴가가 되었으니 특별하지 않게 된 것일까?

 

꽃이 떨어지는 적적함을 느껴본 기억이 있었던가? 거의 매년 벚꽃을 보기 위해 명소를 찾아 다녀왔지만, 꽃이 지는 적적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과거에 다녀왔던 벚꽃 축제 사진을 보아도 감동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일이 많지 않다. 〈인간 극장〉에서 제주도에 함께 내려간 이웃 부부의 말이 인상적이다. 

 

 

 

 

“배 꽃이 떨어질 때 그렇게 적적하더라고.” 

 

“술친구가 없다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 그냥 떨어진다는 것만 해도 안타까운데. 누구라도 오면 지금 떨어지는 꽃을 같이 보면서 즐길 수가 있는데 (꽃이) 다 지고 나면 아무도 이 아름다움을 못 보니까 그럴 때 적적한 기분…” 

 

 

 

삶에 여유가 드리워지는 순간 많은 것들이 변한다. 그 여유로움 속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대책 없고, 게으르고, 답답하고, 느리게 보이지만, 그렇기에 새롭게 알게 된 행복이다. 

 

여유로움은 게으름과 다르다. 〈인간 극장〉에 등장하는 부부도 계속 무언가를 찾아서 한다. 바지를 만들고, 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함께 영화를 본다. 값비싼 선물 대신 마음 담긴 편지를 주고받고, 망친 백설기를 먹으면서 즐겁다고 웃는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게으름을 부리는 것과는 다르다. 단조롭지만 힘들지 않다. 무언가를 계속 하지만 바쁘지 않다. 느슨하지만 채워져 있다. 비어있지만 공허하지 않다. 일상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충분한 힘이 느껴진다. 가끔은 공백을 그대로 즐기기도 하고, 삶의 주인이 된다. 

 

 

 

 

한동안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누리고 생활했지만, 스스로가 풍족하다는 생각은 못하고 지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풍족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지낸 시간이다. 풍족하다는 기준이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갖는 것이었다. 이제는 달라져버린 기준으로 풍족함을 찾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피곤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인상 쓰지 않고, 화내지 않는다. 여유롭다는 단어의 이미지가 변했다.

 

파이어족이 되는 순간, 그러니까 은퇴를 결정하고 회사를 정리하고 더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을 때, 오랜 시간 그 순간을 기다려왔음에도 지금껏 쌓아 놓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허전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오랫동안 놓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어찌 쉽겠냐만은 그 이면에는 여유와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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